5.18 광주민주항쟁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아…

올해로 39주년을 맞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 소속 60여명의 언론인들이 지난 1일 광주광역시 5.18 민주항쟁 추모공원(사진)을 찾았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이 영화로, 산증인의 증언으로 하나 둘 그 베일을 벗어가고 있는 요즘 한국인들에게 ‘광주’는 더 이상 지명이 아니다. 

광주는 한국인들의 무뎌진 양심에 날을 세우게 한 암호다. 더하여, 진정으로 ‘구원’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우리시대의 암호다.
 20세기 분단 조국에 태어난 ‘나’라는 인간의 실존의 근거를 제공해 주고, 역사의식의 청맹과니 상태를 벗어나게 해 주었고, 운명 공동체적 ‘구원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고마움 때문에 광주를 찾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5.18 당시 사망한 영령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영령들, 민주화 운동 공로 영령들의 이름을 마음으로 조용 조용 부르다 보니 다시금 죄책감이 밑바닥에서부터 밀려와 울컥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이들 중에는 생전에 만났던 이름들도 있고, 낮 익은 이름들도 있다.
 저수지에서 친구들과 멱감다 계엄군의 사격에 죽은 방광범(사망 당시 13세), 5•18 및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다 체포돼 옥중단식으로 사망한 박관현, 도청 항쟁 지도부 정상용, 광주항쟁 유혈진압을 항의하며 투신한 김의기, 이성으로 우상을 타파하는데 일생을 바쳤던 리영희 교수, 거대한 민주화의 흐름에 의기 하나로 몸을 실은 무명의 열사들.
 리영희 교수님의 묘비석 앞에 잠시 서서 물끄러미 얼굴을 바라다 보았다. 늘 실증적인 글쓰기를 강조하셨던 교수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