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하와이 국민회 소속 이민선조들의 독립운동 발자취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특히 영자신문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미 주류 사회에 알린 강영각 지사 가족의 독립운동 발자취는 와이아와 지역에 위치한 올리브연합감리교회를 통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1905년에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떠난 강명화 지사와 가족들은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부터 광복되기 전까지 공립협회, 대한인국민회 등에 주요 직책을 맡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한 일제강점기 미주 독립운동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한 독립운동 명문가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강 지사와 장남 강영대 씨, 3남 강영문 씨는 애족장, 4남 강영상 씨는 대통령 표창, 5남 강영각 씨는 건국포장, 사위 양우조 씨는 독립장, 양씨의 아내인 최선화 씨는 애국장을 각각 받는 등 총 8명이 독립운동 포상을 받았다.
강영각 지사의 독립운동 업적이 삼일운동 100주년에 고스란히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강 지사의 부인 메리와 그 후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른의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세 자녀를 키우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남편이 발간한 영자신문을 소중히 간직하며 먼저 간 남편의 조국사랑의 마음을 기억하고 자녀들과 이웃에게 전했기 때문이다.
60년 이상 보존되었던 신문과 유품들은 우여곡절 끝에 그의 딸 수잔에 의해 지난해 한국의 독립기념관에 기증됐다.
올리브연합감리교회에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담임목사로 시무했던 데이비드김창환 목사(85)는 제3의 하와이 한인 이민물결 속에 사탕수수농장 이민후손들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있는 몇 분 안되는 하와이 올드타이머이다.
지금은 올리브연합감교회 평신도로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이민선조들의 활약상과 와이아와 군 기지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한인사회 초창기 역사를 후세들에게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김 목사는 강지사의 부인 메리 여사가 생전에 살던 하와이 카이 집을 교인들과 함께 찾곤 했는데 2011년 세상을 떠난 메리 여사는 남편의 발행 신문 및 유품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누구에게도 쉽게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신문을 김 목사는 아직도 몇 장 보관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신문을 자신이 보관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김 목사는 “와이아와 올리브 연합감리교회는 다른 한인 교회들과는 달리 강영각 지사를 비롯 국민회에서 활동했던 초창기 이민선조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교회에 출석하며 이민선조들의 독립운동 정신의 맥을 잇고 있다”며 “조국 광복을 위해 기부를 아끼지 않았던 하와이 국민회원들은 독립된 조국을 방문하기 위해 여권을 신청했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한국 정부는 여권발급을 불허해 동포사회는 한국정부에 대한 배신감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고 전했다.
그런 과정에서 일부 동포들은 친북성향을 띄며 북한에서 발행되는 간행물을 받아보기도 해 그 당시에도 ‘빨갱이’ 논란이 일기도 했다고 회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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