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9일 무량사 창건주 기대원 스님의 49재가 열린 무량사 문화원에는 모처럼 얼굴을 마주하는 신도들이 반갑게 안부를 나누며 기대원 스님의 입적을 기리며 스님과의 이별을 아쉬워 했다.
차형권 거사와 이귀년 보살은 이날 서로를 ‘갑장(‘1941년생 동갑이란 뜻)이라 부르며 무량사 창건 50년의 역사의 물줄기를 튼 기대원 스님의 지난 날을 기억했다.
이들 두 거사와 보살은 1970년대 하와이로 이민 온 새 이민 1세 이민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1973년 미 본토로의 유학 길에 잠시 방문했던 하와이에 친구의 권유로 눌러 앉아 오늘에 이른다는 차형권 거사(불교에서 남성 신도는 거사, 여성 신도는 보살로 통용)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칼리히 지역에서 동양식품을 운영하며 가족들을 초청해 하와이에 정착했다.
동양식품을 운영하며 경제인협회를 조직하고 식품상협회를 발족시키는 등 한인들의 권익신장을 높이는데 앞장섰는가 하면 에퀴터블 생명보험을 한인들에게 소개하며 재정관리사로, 한인자본 은행 오하나 은행(현 CBB 은행 전신) 창립설립 이사로 활동하며 하와이 하이비스커스 라이온스클럽을 창립한 멤버이기도 하다. 지금은 두 딸이 사는 캘리포니아를 수시로 방문하며 손자, 손녀들의 뒷바리지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귀년 보살은 한국에서 용산 대사관 클럽에서 한국으로 부임하거나 한국을 떠나는 미군 장교들의 정착 및 이주를 돕는 일을 전담하다 시댁 어르신의 초청으로 1973년 하와이에 이민 왔다.
식당 운영을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던 시댁 가족은 막상 와서 보니 술집을 운영했고 그곳에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 얼마동안 일하다 결국 이혼하고 트리플러 병원에서 군인들의 재활을 돕는 재활 간호사로 일하다 허리를 다치며 일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 후 일본인 2세와 재혼하고 전업주부로 오늘에 이른다.
차 거사와 이 보살은 대원사 사찰 창건이 한창이던 1970년대 후반은 하와이 전역이 월남전 특수를 누리며 건축 붐이 일어났고 와이키키 지역에 유명 호텔들이 줄줄이 들어섰다고 회고한다.
당시 25사단을 중심으로 하는 펄 하버 일대는 월남전 파병 군인들의 훈련소를 찾는 미 전역의 군인들로, 또 월남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고 트리플러 병원에서 치료받는 군인들로 또는 월남전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재회하는 휴양지로 하와이는 붐볐고 이 같은 경기호황은 당시 한인 운영이 많았던 유흥업소들의 호황으로 이어져 하와이에 한국 사찰 건축을 건축하겠다는 대원스님의 꿈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되었다는 것.
차 거사는 기대원 스님이 하와이대학교 글렌 페이지 교수의 초청으로 하와이에 도착해 1975년 총영사관 후정에서 첫 법회를 시작으로 팔롤로 계곡에 대원사를 창건하기까지 당시 박인규 초대 신도회장을 중심으로 사찰 창건의 불길이 타올랐다고 회고한다.
이 보살과 차 거사는 당시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기대원 스님은 한국의 정재계 불자들로부터 큰 몫의 시주를 받아와 당시 한인사회 역량으로는 불가능했던 대원사 불사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
결국 무량사 창건의 역사에는 새 이민 1세 한인사회 발전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셈이다.
이 보살은 “당시 부산보살이 담그는 김치 맛이 일품이라 그 김치를 신도들이 식당이나 업소들을 가가호호 방문해 판매하며 사찰 건축에 힘을 보탰다”며 “그 결과 하와이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전통 사찰을 세웠지만 앞으로 50년, 60년의 무량사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외형 보다는 내실을 다지며 불자들도 포교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외화내빈을 경계하며 ‘부산보살’과 같은 적극적인 보살들의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한다.
한편 지난 5월12일 입적한 고 기대원 스님은 1975년 하와이로 이주, 1975년 7월 조계종 전 종정 윤고암 스님이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후원에서 첫 법회를 봉행하며 창건한 대원사(무량사의 전신)의 초대 주지로 1978년 현재의 사찰부지인 2420 할레라우 플레이스에 3,500평 부지를 매입, 1982년 대웅전, 명부전, 종각, 사리탑을 완공했다.
1986년 3천500 평 규모 문화원을 착공했으며, 1988년 건축법 관련 소송으로 문화원 공사가 중단됐다. 1996년 2대 주지로 도현스님이 취임하고 2000년 대원사에서 무량사로 개명했다.
대원스님은 1998년 호놀룰루 중심가에 정법사를 개원하고 선원장으로 활동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대원사 주지로 활동하는 동안 세계 불교석학 초청 세계평화 학술회의를 주관하는 등 당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초청으로 북한을 5회 이상 방문하며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서대숙 초대 소장과 더불어 남북통일과 북한과의 불교 및 학술교류에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