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2018 세계한인회장대회에 하와이가 초청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23대 하와이 한인회’의 일방적 임기 연장으로 다시금 불거 지고 있는 ‘하와이 한인회’ 정상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보는 2018년 하와이 한인사회 비정상의 현실을 돌아보며 동포들과 함께 정상화의 길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본다.
<편집자주> 1)‘하와이 한인회’ 비정상 운영의 정상화 시급▶ 한인회 vs 문추위 소송 장기화로 동포사회 분열 고착화 ▶ 한인록 발행 수익금 사용 내용 등 투명한 한인회 운영은 옛말 그들만의 리그로 동포사회 무관심, 비영리단체 운영 비공개 당연시▶ 노인복지, 코리안 페스티벌, 세대간 화합 등 한인사회 주요 현안 뒷전
2015년 7월에 열린 23대 하와이 한인회 첫 이사회 모습, 이날 이후 23대 한인회는 비공개 운영으로 일관하며 홍보성 보도자료만 보내 오곤 했다. <본보 자료사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다민족 사회 이민자들은 사회적 약자 입장에서 개개인의 권익 신장을 위해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정치 이익단체들을 조직하고 자신들이 속한 커뮤니티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이민 115년의 역사를 지닌 하와이 한인사회도 1903년 사탕수수농장 이민 후손들이 5-6세대를 이어가며 하와이 토박이(카마아이나)로서 지역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03년 하와이 미주한인이민 100주년기념사업의 성공적 개최는 하와이 주민으로 살고 있던 사탕수수농장 후손들에게 한국인 후손으로 정체성을 불어 넣으며 하와이 한인사회에 관심을 갖게 했다
115년의 이민역사를 자랑하는 하와이 한인사회는 1903년 사탕수수농장 이민자들의 후손들과 1960년대 후반 제3의 이민물결 속에 하와이에 정착한 1세들과 그 후손들이 서로 다른 성장배경 문화와 세대 차 극복의 과제를 풀어가며 한인사회 위상을 높여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60년대 후반부터 본격 이민길에 오른 한인 1세들은 해외 각 지역에서 ‘한인회’라는 봉사 기능단체를 조직하고 주류사회와 한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며 이민자들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고 소수민족으로서의 권익을 찾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미주 어느 지역에서나 한인회 주변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와이 한인회’는 1981년 이정우 초대회장을 시작으로 신현종, 조태룡, 고영수, 김정남, 설 영, 강동석, 주기성, 이우홍, 서성갑, 김영해, 강기엽, 박봉룡 한인회장으로 그 맥을 이어왔다.
하와이 한인회가 오늘이 있기까지 한인회장의 공금유용 사건, 나홀로 한인회장의 편법 운영 등으로 한인회가 동포사회 지탄을 받아 왔지만 그때마다 뜻을 같이 하는 동포들이 여론의 지지를 얻어 문제를 해결하며 23대까지 그 맥을 이어 왔다.
그러나 2011년 21대 하와이 한인회 탄생 이후 지금까지 7년여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하와이 한인문화회관건립추진위원회’와의 갈등은 2015년 6월 22대 한인회가 임기를 마감하며 결국 법정 소송으로 비화되어 23대 한인회의 발목을 잡았다.
2015년 ’23대 하와이 한인회’는 출범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선거관리위원회 운영으로 ‘호놀룰루 한인회’를 탄생시키더니 임기 말에는 명분없는 일방적인 임기 연장으로 ‘하와이 주 한인회’ 탄생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로인해 종교 단체를 비롯한 동포들이 모이는 단체 곳곳이 분열되고 정작 동포사회 주요 현안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대외적인 공신력을 실추시켰다. 이로인해 한인 비영리단체 비정상 운영의 일상화를 부추기며 커뮤니티 세대간 화합의 발목도 잡고 있다.
점입가경으로 일방적인 임기 연장에 돌입한 23대 하와이 한인회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며 ‘하와이 한인회’는 한국 정부로부터 분규 단체로 지적되어 한인회 이름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식은 한인사회 현안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동포들로 하여금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더 이상은 안된다”며 종교단체들이 앞장 서 ‘한인회 정상화’를 통한 동포사회 화합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인사회가 대외적으로 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한인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