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마마켓 임효규 회장
1903년부터 뿌리 내리기 시작한 사탕수수농장 이민선조들이 이루어 낸 문화 유산을 터전으로 1970년대부터 이주해 온 ‘새 이민 1세’들은 나름대로 주류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이민 200년 역사 만들기 원동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민 100주년기념사업 성공 개최 후 일기 시작한 한류열기로 경제적 기반을 다지며 지역사회와 한인사회를 아우르고 있는 팔라마마켓 임효규 회장을 만나 보았다.
<팔라마마켓의 태동>
“1971년 UH 유학생으로 하와이에 건너와 급성 신장염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칼라카우아에서 작은 그로서리 마켓을 시작한 것이 오늘의 팔라마 마켓의 태동인 셈입니다”
하와이대학교 농과대학 유학생 임효규(1945년 서울출생)가 건강악화로 공부를 중단하고 1976년부터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시작한 작은 구멍가게가 하와이 팔라마 마켓으로 성장하기까지 대장정에는 하와이 새 이민 한인 1세들의 지역사회 뿌리내림의 공통적인 스토리가 녹아있다.
임효규 회장은 70년대 중반 한국식품 유통업에 뛰어든 후발주자였다. 당시 하와이에는 동양, 한국, 고하 등 한국식품점이 운영되고 있었다.
임 회장은 칼라카우아 애버뉴 지금의 두꺼비 식당 자리에서 대한식품이란 후발주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신선하고 착한 가격의 야채와 식품을 구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도 로컬 수퍼마켓식 매장 인테리어 공사를 추진하기 위해 은행문을 두드렸다.
당시 리버티 은행의 여성 은행장이 이렇다 할 담보도 없는 작은 구멍가게를 믿고 대출해 준 것이 오늘의 팔라마 터전을 마련해 준 셈이다.
은행권의 적절한 지원 덕분에 로컬마켓에서나 볼 수 있는 냉장고가 들어오고 인테리어를 변모시켜 매상을 높였고 한국과의 무역을 시작하기 위해 신용장 개설도 흔쾌히 이루어져 비즈니스 성장의 큰 힘이 된 것이라며 당시의 여성 은행장을 은인으로 기억한다.
1981년 작은 구멍가게가 자리했던 건물을 사서 건물주가 되었고 1984년엔 당시 식자재를 납품했던 지금의 서울가든 자리의 수경식당을 어떨 결에 맡게 되어 대박을 쳤다.
그러나 식당은 일하던 종업원에게 넘기고 식품업에 전념하기로 하고 딜링햄 지역으로 이전한다.
<팔라마마켓의 도약>
1986년부터 팔라마 마켓 로고송과 더불어 팔라마 마켓이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89년 임 회장은 팔라마 마켓을 처남에게 맡기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본격 농사를 시작한다.
하와이대학교 농과대학 유학생으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320에이커에 달하는 농장을 임대하고 각종 야채를 재배하며 5년여 농부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농장을 확장하며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었지만 정작 시골 생활은 더 이상 못하겠다는 부인의 반대와 팔라마마켓을 맡았던 처남이 더 이상 운영을 못하겠다고 손을 들어 부득이 농사를 접고 다시 하와이로 돌아왔다.
“1995년 제가 다시 하와이에 돌아 왔을 때에는 퀸스마켓이 승승장구하고 있었어요. 제 나름대로 엘에이 농장들과 직거래로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공급하고 매장 관리에 공을 들이며 팔라마 마켓의 제2의 전성기 기반을 다져가기 시작했어요.”
임 회장은 1998년 칼라카우아 애버뉴 지금의 제2 매장 부지를 매입하고 한동안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매장 신축 공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2003년경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며 은행 융자를 받을 수 있게 되어 본격 제2매장 신축공사를 시작하게 되고 그때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던 아들 데니엘을 불러 들여 팔라마 제2매장을 마무리하고 비즈니스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임 회장은 “다행히 데니얼이 비즈니스에 흥미를 느끼며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어요. 2007, 2008년 팔라마 제3매장 인수와 지금의 칼리히 제 1매장 부지 매입 및 신축은 거의 전적으로 아들이 맡아 추진했어요. 칼리히 매장 본점은 2013년 완공했어요”
<차세대와 함께 하는 팔라마마켓>
마칼로아 매장에 이은 칼리히 본점 매장의 성공적인 건축을 통해 1세대가 이룬 비즈니스를 2세에게 물려주는 작업이 순조롭게 이어진 셈이다.
부모의 비즈니스를 물려 받은 2세데니얼은 팔라마 마켓에 차세대 감각을 더한 <팔라마 익스프레스> 브랜드를 런칭하고 현지 컨비니언 스토어 개념의 마켓으로 도심 속 빌딩이나 학교내 구내 매점으로 매장을 확장해 가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1세대가 이룬 오늘의 팔라마 마켓이 있기까지 물건 값을 떼이고 종업원들과의 갈등 등 여러가지 시련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이민 100주년기념사업 성공 개최 이후 일기 시작한 한류열기가 하와이 한국식품 유통업계에 큰 도약의 날개를 달아준다.
임 회장은 고비고비 힘든 시기도 많았지만 거친 풍파를 헤쳐갈 수 있는 힘의 원동력으로 기도와 가족들의 합심 그리고 은행권으로부터의 신뢰를 꼽았다.
특히 지난해 결혼 50주년을 보내며 임 회장은 문득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인어른의 믿음에 순종하며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한다.
자식들과 이민 후배들에게도 이 깨달음을 꼭 전하고 싶다”고 전한다.
“지금의 내가 이룬 부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사업이 팔라마 장학재단 설립입니다. “
1999년 설립한 팔라마장학재단은 지난해까지 155명 장핵생을 선발해 학생당 5,000달러 장학금을 지급하며 한인사회 차세대 인재양성 작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런가하면 1997년 설립된 맥컬리 주립도서관내 한국도서재단의 한국어 도서 보급을 위해 신간도서 수송을 팔라마가 전담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덕분에 오늘날 하와이 주민들은 물론 한인들은 한국의 신간도서를 주립도서관을 통해 대출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의 지방자치제도 특산품을 하와이 지역사회에 알리기 위해 매년 한국 특산품전을 개최하며 한국의 다양한 먹거리를 하와이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근면 성실한 1세 부모가 ‘작은 구멍가게’로 시작해 터전을 다진 비즈니스는 현지 교육을 받은 아들, 딸들이 물려 받아 전문 경영 지식을 더해 주류사회에서 주목받은 비즈니스로 키워가고 있는 비즈니스 성장 스토리는 팔라마 마켓 외에도 현재 잘나가는 한국계 비즈니스 업체들의 공통적인 유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