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이웃 섬 마우이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교회와 하와이 미주 한인재단 주최로 한인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며 ‘무명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한 한인 묘비 탁본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입니다.
탁본이란 나무 또는 금속에 새겨져 있는 문자나 부조를 종이에 모양을 그대로 본뜨는 것을 말합니다.
100년 전 하와이에 거주한 5,600명의 한인 중 3,000여 명의 이민자들은 안중근 재판경비 지원금, 3.1운동 지원금, 한글학교 운영지원금 등,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3,000여 명의 한인 중,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은 사람은 100여 명에 불과합니다.
존재했지만 실존하지 않는 인물들, 주연 못지않게 많은 역할을 하고도 묻히거나 잊혀진 사람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조국이 기억하지 않고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은 하와이 무명 독립운동가의 묘비를 찾아 탁본하여 한분 한분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인 묘비 탁본 행사를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배우 김승우씨와 한국 MBN TV 제작사와 하와이 KBFD 관계자와 함께 이른 아침 마우이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곧바로 무명의 독립유공자가 묻힌 한인 묘지로 향했습니다.
도착해서 본 묘지는 우리가 주위에서 보는 잘 가꾸어진 공원묘지가 아닌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잡초만 무성한 공동묘지였습니다.
그나마 마우이 한인회에서 묘지에 관심을 가지고 잡초를 벌목하고 관리하여 자못 수풀에 가리워질 뻔했던 무덤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방치된 무덤의 모습은 잊혀진 슬픔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탁본한 무명 독립유공자는 ‘남상학’ 씨의 묘였습니다.
그는 1878년 5월에 경상남도 선녕군(합천군)에서 태어나 1945년 12월에 마우이에서 별세했습니다.
탁본을 하는 동안 묘비석에 새겨진 짧은 기록 속에 담겨있을 많은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빛바랜 비석 위에 하얀 한지를 덮어 먹물 먹은 솜방망이로 조심히 두드리자 희미했던 남상학씨의 삶이 서서히 밝게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탁본 된 하얀 종이 위에 그의 삶이 밝게 드러난 것처럼 마치 무명 독립유공자의 삶이 드디어 빛을 보며 역사 속으로 걸어 나온 것 같았습니다.
역사는 기록되어져야 하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집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많은 하와이 무명의 독립유공자를 찾아 그들의 영웅적 헌신과 희생의 마지막 흔적인 묘비가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삶과 이름을 찾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하는 것이 남아있는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이들의 삶의 아름다운 흔적과 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다음 세대에 계속해서 전해야 합니다.
탁본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내가 있기까지, 오늘 우리 교회가 있기까지, 오늘 내게 구원이 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을까?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다 갚을 수 없는 그리고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은혜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한의준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