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기념 특집기획] 하와이 ‘길’ 이름 속에서 이민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팔라마수퍼마켓 제 1매장이 있는 지역이 칼리히 (Kalihi)이다.  하와이 말로 “끄트머리” 또는 “경계선”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케에히(Keehi “밟는다”라는 뜻) 포구로부터 코올라우(Koolau: “바람이 부는 쪽”이라는 뜻) 산맥까지 이어진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하와이 토지분할제도인 아후푸아아 (Ahupuaa)로 분할된 지역이다.  아후푸아아 제도는 하와이 왕국의 토지를 분할할 때 산에서 바다까지 계속되게 분할하여 관리하도록 한 제도이다. 다시 말하면 한 부지를 바다에서 산까지 가르는 제도이다. 원주민들의 “바다에서 산까지 수확할 수 있는 권리 Gathering Rights from the Sea to the Mountain”를 보장하는 제도였다.  산의 풍부한 야생 과일 등의 식물과 바다의 물고기, 톳 등의 해산물을 채취하여 생활한 경제문화체제를 뒷받침한 것이다.  아후푸아아라는 말 자체는 “돼지 제사상”이라는 뜻인데, 각 아후푸아아 경계선에 돼지머리를 새긴 돌 제사상을 놓은 것에서 연루되었다고 한다.  칼리히 지역은 역사적으로 가난한 동네다. 새로 이민 와서 어려움을 겪는 가난한 사람들이 우선 모여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칼리히 출신으로 출세한 사람들은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성공한 자신들을 늘 자랑스럽게 여긴다.  2000년도까지도 선거철이 되면 칼리히 출신임을 강조하는 후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전 호놀룰루 시장 무피 한네만(Mufi Hanneman), 전 하와이 주지사 벤 카예타노 (Ben Cayetano), 한국계 하와이 주상원의원 다나 멀카도 김 (Donna Mercado Kim)을 비롯하여 칼리히 출신 정치인들이 많다. 김 상원의원은 한인 3세로 어머니는 필립핀인이다. 칼리히 지역에 있는 패링턴고등학교와 패링턴 하이웨이는 왈레스 패링턴 (Wallace Farrington) 하와이 전 주지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패링턴 주지사는 1921년부터 29년까지 하와이 영토의 지사를 지냈고,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스타 불르틴 신문의 발행인이기도 하였다. 칼리히 초등학교는 1918년 이승만 박사가 세운 한인기독학원이 1923년에 새 학교 시설을 짓고 운영되어 온 학교 부지의 일부였다.  1935년 1월 24일에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하와이로 돌아온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학교 기숙사에 머물었다.  한인기독학원 설립 후 처음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교장이 되었고, 프란체스카 여사는 기숙사 사감이 되었다. 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한다.  한인 여학원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인기독학원도 학비는 일체 받지 않고, 기숙사비만 받아가며 학교를 운영했었다.  더구나, 기숙사비를 낼 수 없는 학생에게는 장학금명목으로 기숙사비를 면제해 주었다. 동포들 뿐만 아니라, 미국인 친지들의 후원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31년 11월부터 하와이를 떠나 있는 동안 후원비 모금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혼의 부부가 학교와 기숙사 운영을 도맡아 했던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손수 자동차를 운전하여 호놀룰루 항구로 가서 다른 섬에서 오는 학생들 영접도 나갔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여학생에게 피아노도 가르쳤다.  1939년 11월에 세계 정세의 변동을 감지한 이승만 전 대통령 부부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워싱톤으로 이사하였고, 그 후 학교는 기숙사로 운영되다가 1947년에 폐교 되었다. 학교 부지 중 약 24에이커는 1950년 10월에 약 24 부동산개발업자에게 팔았고,  여학생 기숙사가 있는 땅 1.12 에이커는 남겨 놓았다.  원래 36 에이커 땅이었는데, 중간에 학교 운영 빚을 갚느라고 약 10 에이커를 팔았었다.  1953년 8월에 한인기독교회가 노후 된 교회 소속 한인양로원을 팔고  새 양로원 시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인 20명이 이 기숙사로 옮겨와 거주하였다.   이 1.12 에이커는 1955년 하와이 영토 정부가 칼리히 터넬 (현 윌손 터넬)로 가는 길 리케리케 하이웨이를 확장하기 위해 매입하였다.  학교 부지 매각금은 이승만 대통령이 구상하던 공과대학 설립을 위해 종자돈으로 보내졌다. 그 공과대학이 지금의 인하대학교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하공과대학 안에 하와이교포기념관을 설립하여  한인기독학원 발기 주동자들과 후원회원들의 명록, 그리고 다른 한인 이민 역사기록과 사진, 유물 등을 보유, 전시하고자 계획하였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계획과는 달리 하와이교포기념관은 세워지지 못했고,  대신에 실내체육관이 1973년에 세워졌다.  체육관 옆에 <하와이 교포 기념관>이라는 동판만 있다.  다행스럽게도 인천광역시가 2008년 6월에 이민사박물관을 개관하여 미국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나라 이민과 관련된 유품과 기록을 기념 전시하게 되었다. 한편, 학교 부지를 매입한 개발업자가 24 에이커를 개인 주택단지로 개발하면서, 여러 길거리 중에 쿨라 콜레아 드라이브와 쿨라 콜레아 플레이스라는 이름을 붙혔다.  

쿨라 (kula)는 하와이 말로 “학교” 이고, 콜레아(Kolea)는 “코리아” 이다. 즉 한국 학교가 있었던 것을 기념하여 지은 이름이다.  학교 시설물들이 있던 장소는 현재 칼리히초등학교가 되어있는데, 주소가 2471 Kula Kolea Drive 이다. 한인기독학원의 주소는 2134 Halina Street 이었다.   한인기독학원에서 바라보는 리케리케 하이웨이 건너편 칼리히 계곡, 3097 칼리히 스트리트에서 1930년대에 김치공장이 시작되었다.  

김진화와 사진신부로 온 부인 김수천이 “다이아몬드 K” 라는 이름으로 김치공장을 시작한 것이다.  “다이아몬드 K”는 네개의 K 즉, 김치 Kim Chee, 칼리히 Kalihi,  한인 Korean, 김씨 Kim을 일컫는 것이다.   1950년대에 셋 아들 조세프의 이름을 따서  Joe Kim’s 김치로 바꾸었고, 1980년대에는 조세프의 아들 리차드가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2017년 5월부터 현대 이민 1.5세 송수찬이 이 사업을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초기 한인 이민자의 3세대가 계속 운영하다가  한인 새 이민자에게로 이어진 유일한 사업체이다.     [미주한인재단 하와이/건국대통령 우남 숭모회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