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기념 특집기획] 하와이 ‘길’ 이름 속에서 이민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이덕희 하와이 이민사연구원

이올라니 궁전은 칼라카우아 왕이 1882년에 지은 건물이다. 칼라카우아 왕은 1874년에 즉위하였고, 대관식은 9년 후인 1883년에 있었다. 이올라니 궁전에서는 매년 칼라카우아 왕 즉위식을 재현하고 있다. 이 궁전 이전에 소위 원조 이올라니 궁전이 있었다. 1845년에 카메하메하 3세 왕이 수도를 마우이 섬의 라하이나 (Lahaina)에서 호놀룰루로 옮기면서 궁전을 짓고 ‘귀족의 집’ (Hale Alii)이라고 불렀다.  1863년에 카메하메하 5세가 이 귀족의 집을 자기 형 4세의 이름인 이올라니 (‘왕족 매’라는 뜻)를 따서 이올라니 궁전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1879년에는 이 궁전 옆에 지금의 궁전을 새로 짓기 시작하여 1882년에 완공하고, 이 새 궁전도 이올라니 궁전이라고 불렀다. 새 이올라니 궁전에서 칼라카우아 왕과 그리고 1891년 1월 20일 샌프란시스코 방문 중에 타계한 그의 후임으로 그의 누이이며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여왕인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가 집권 하였다. 1893년에 미국이 하와이 왕국을 전복한 후 하와이 임시정부가 이 건물을 사용하였고, 후에는 하와이 영토 사무실로 또 하와이 주청사로 사용하였다. 지금의 하와이 주청사는 미 본토의 유명한 잔 카 워네키 (John Carl Warnecke) 건축회사가 설계하여 1969년에 완공한 것이다. 하와이 주청사는 열린 디자인의 건물로 해와 바람과 비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더구나 1층 중앙 원형의 바닥 위에는 지붕이 없어 하늘을 볼 수 있다. 청사를 돌아가며 있는 물은 태평양을, 상하의원 의회실 바깥 벽은 화산을, 기둥은 야자수를 상징한다. 이 청사 둘레에 5기의 기념물이 있다.  이올라니 궁전과 청사 사이에 릴리우오칼라니 여왕 동상이 있으며, 베레타니아 스트릿 쪽에는 데미안 신부 (Father Damien)의 동상이 있다. 데미안 신부는 칼라우파파 나병 환자촌에서 16년 동안 나병환자들을 돌보다 자신이 나병에 걸려 1869년에 타계한 천주교 신부이다.  데미안 신부 동상  옆에 자유의 종이 있는데, 1950년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미의회가 하와이 영토에 자유와 민주주의 기념으로 보낸 것이다. 베레타니아 스트릿 건너에는 하와이 출신으로 모든 전쟁에서 순국한 군인들을 위한 불이 꺼지지 않고 타고 있으며, 청사에서 다운타운 쪽에는 한국전쟁에서 순국한 하와이 출신 군인 454명의 이름과 월남전쟁에서 순국한 31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기념비가 있다. 청사에서 펀치볼(Punchbowl) 스트릿을 건너면, 칼라니모쿠(Kalanimoku) 라는 주 정부 사무실 건물이 있는데,  1906년에 하와이 감리교선교부가 이 부지에 한인들의 요청으로 한인기숙학교를 설립하였다. 1913년 가을에 이승만 박사가 이 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되면서 한인들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한인중앙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중앙학교는 1918년까지 계속되면서 이민 초기에 나이든 학생이나 어린 아동들의 교육을 맡아 공립 초등, 중학교 수준의 교육과 더불어 한글과 한국역사와 지리와 성경도 가르쳤다. 특히 성인들을 위해서는 실업학교의 역할까지도 하였다. 주 청사에서 베레타니아 스트릿을 건너면 주지사 관저가 있다.  관저의 후문은 주 보건국 주차장 쪽에 있는데, 주차장 바로 건너편 주지사 관저 끝에 국민회총관이 있었다. 국민회총관은 1914년에 새로 지어 1949년까지 사용되었다. 주지사관저 확장을 위해 이 국민회총관을 하와이 영토정부에서 매입하였기 때문에 국민회는 루크(Rooke) 애버뉴로 이사하였다.

루크 애버뉴의 국민회 건물은 2003년 한국의 경민학원이 인수해 ‘한국독립문화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하와이 이민선조들의 독립운동 및 해외 한민족 독립운동의 전시박물관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목적을 저버리고 결국 2016년 일본계 미국인 부동산 개발업자에 비밀리에 매각, 현재는 개인 소유 건물이 되었다. [미주한인재단 하와이/건국대통령 우남 숭모회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