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기념 특집기획] 하와이 ‘길’ 이름 속에서 이민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이덕희 하와이 이민사연구원

호놀룰루의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솔트 레이크 (Salt Lake: 한인들은 흔히 ‘솔레익’이라 부른다) 지역에 소금이 나는 호수가 있었다.  하와이 말로 알리아 파아카이 (Alia paakai: ‘소금이 붙어있다’)라고 불렀으나, 이후 서양인들이 솔트 레이크 (소금 호수)로 바꾸었다.  1822년에 두 영국인 선교사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이 호수 근처 바위, 나무, 풀 등에는 하얀 소금가루가 엉겨있고, 멀리 바닷가까지 소금으로 덮였었다.  소금의 질도 좋았고, 오아후 섬에서는 보기 드문 유일한 기현상이었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이 소금을 수확하여 판매하기도 했다.  결국 1850년경에는 소금이 다 떨어졌고, 1910년에 이 근처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려 그 호수에 물을 붓기 시작하면서 소금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지역은 버니스 파우아히 비샵 (Bernice Pauahi Bishop) 공주의 소유였는데, 그가 죽으면서 모아나루아Moanalua: ‘호수’) 지역을 포함한 9,450 에이커의 땅을 남편 챨스 비샵 (Charles Bishop)의 동역자인 은행가 새뮤엘 데몬 (Samuel Damon)에게 물려 주었다.  1924년에 데몬이 죽고 그의 재산은 데몬재단에 속하게 되었으며, 1950년대에 데몬재단이 1,300 에이커의 솔트 레이크-모아나루아 땅을 중국계 사업가 클레어렌스 칭 (Clarence Ching) 과 케이 제이 루크 (K. J. Luke)에게 팔았다. 이들은 1960년대 중반에 이 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260 에이커의 호수 중 63 에이커를 메우기 시작하였다.  그 후 조금씩 더 메워 1980년대에 매립을 마쳤고,  대부분의 매립지에 호놀룰루 컨트리클럽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옛날 호숫가에 살던 하와이 토종 새들은 다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은 개인주택, 아파트 단지로 꽉 들어차 있다.  이 지역의 길 이름들은 꽃이나 식물 이름으로, 앞에 알라 (Ala: 길)라는 말이 붙어있다.  알라 일리마 (Ala Ilima: 일리마꽃 길), 알라 레후아 (Ala Lehua: 레후아꽃 길) 등이다. 호수가 있었을 때 이 지역에 흔했던 나무 중에 케아베 (Keawe, 영어로는 알가로바 algaroba) 라는 나무가 있었다.  케아베는 하와이 전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이다. 씨가 들어있는 콩 꼬투리를 돼지, 말 등 동물 사료로 사용하였다.  사탕수수농장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이 콩꼬투리를 모아서 팔아 용돈을 벌어 썼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이 나무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쥐엄나무이다.  성경의 탕자 이야기에서 탕자가 너무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었다고 했다.  1903년 12월에 한국에서 사역을 하던 새뮤엘 무어 (Samuel Moore 모삼열)라는 장로교 선교사가 하와이에 들려 한인 노동자들을 둘러 보러 다니는 길에 이 쥐엄나무 열매를 맛보았는데, 무어 선교사는 이 열매 맛이 달콤하며 먹을만 했다고 그의 보고서에 기록하였다.  무어 선교사는 하와이에서 한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처음으로 직접 보고 알린 사람이다.  무어 선교사는 1892년에 46세의 나이로 서울에 도착하여 비천한 계급의 사람들의 인권을 주창하고, 계급제도 타도에 앞장 섰으며, 백정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무어 선교사는  한인들이 하와이 농장주들에게서 노예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많은 이들이 병이 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하였다.  그래서 미 본토에 휴가를 다녀 오는 길에 하와이에서 진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카후쿠 농장을 방문하여 한인들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보았고, 지배인은 일을 잘하는 한인들을 더 많이 원하였기 때문에 안심하였다.  무어 선교사는 1906년 서울에서 소천하여 서울 근교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미주한인재단 하와이/건국대통령 우남 숭모회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