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기념 특집기획] 하와이 ‘길’ 이름 속에서 이민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이덕희 하와이 이민사연구원

팔리 전망대 (Pali Lookout)는 1964년에 설립된 3 에이커의 누우아누 팔리 주립공원 안에 있다.  대부분의 주립공원과 마찬가지로 자연보호지역으로 자연경관을 위주로 설립되었다.  1957년 지금의 팔리 하이웨이가 완공되면서, 전에 있던 길 (현 Old Pali Road) 옆의 전망이 좋은 곳에 세운 것이 지금의 전망대이며, 그동안 여러번 개축되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연간 60만 명이나 된다. 하루에 평균 1,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니 주차장 등 전망대를 자주 개축해야 할 수 밖에 없다. 한인 관광객들에게는 ‘바람산’으로 알려졌다. 팔리 전망대가 있는 곳은 1795년 역사적 비극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카메하메하 대왕이 하와이 왕국을 통일하면서 마우이 섬과 카우아이 섬을 정복한 후 오아후 섬에 전진할 때 와이알라에-와이키키 지역으로 군사를 몰고 왔다.   그 때 와이키키에 살고 있던 칼라니쿠풀레 (Kalanikupule) 장군이 그의 군대를 누우아누 요새로 데리고 가서 접전을 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 곳에서 마지막 남은 400여명의 군사들이 (아마 ‘싸울아비’라는 말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싸울아비가 일본어의 ‘사무라이’의 어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카메하메하 대왕의 군사와 격전 끝에 1,000 피트 (약 100층 높이)의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  다른 이야기로는 400명의 군사들이 항복을 하기 보다는 자결하겠다고 벼랑에서 뛰어 내렸다 한다.  칼라니쿠풀레는 부하 몇 명과 그곳을 용케 빠져나갔으나, 결국에는 잡혔다.  카메하메하 대왕은 그를 다이아몬드 분화구 안에 있는 제단 (heiau)에서 전쟁 수호신인 쿠카일리모코 (Kukailimoko)에게 산 제물로 바쳤다.  1898년에 팔리 옛길 확장공사를 할 때에 800 기의 유골이 나와 전쟁의 참혹함을 상상할 수 있었다 한다. ‘팔리’라는 같은 뜻의 이름으로 카우아이 섬 북서쪽의 깎아지른 해안이 펼쳐 있는 나팔리 (Napali)가 있다. Na는 전치사이다. 나팔리의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우연하게도, 제주도 방언으로 바닷가 벼랑을 베리라 한다.  하와이와 제주도는 화산 현상으로 이루어져 지질학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은데 벼랑이 베리이고, 팔리가 벼랑인 것이다.  제주도 경관 중 눈에 띄는 것은 기생화산이라는 독립된 산 또는 봉우리인데, 제주도 방언으로 ‘오름’이다.  하와이 말로는 푸우 (puu)이다.  오아후 섬 동쪽의 코올라우 (Koolau: ‘바람이 부는 곳‘) 산맥이나 서쪽의 와이아나에 (Waianae: ‘숭어가 사는 물’) 산맥 곳곳에 푸우 봉우리들이 많다.  호놀룰루 시내에 있는 탄탈러스 (Tantalus)의 하와이 이름도 푸우 우알라카아 (Puu Ualakaa: ‘굴러 떨어지는 고구마 봉우리’)이다.  푸우 우알라카아는 그곳의 주립공원 이름이기도 하며, 이 공원 전망대에서는 시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오아후 섬에서는 제주도의 오름 풍경, 즉 넓은 벌판에 우뚝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들의 풍경을 볼 수 없다.  제주도와 같은 오름 풍경을 보려면 마우이 섬의 마케나 (Makena: ‘풍부함’) 지역에서 동남쪽 키파훌루 (Kipahulu: ‘오랜 경작으로 메말라진 토방’) 지역으로 가야 한다.  시야가 탁 트인 지역에 멀리 바닷가가 보이고 여기저기 오름들이 있어 제주도에 있는지 하와이에 있는지 착각하게 된다.  보통 관광객들이 마우이 섬 카훌루이 (Kahului:’‘승리하는’) 공항에서 꾸불꾸불 돌아가는 외길로 하나 (Hana: ‘계곡’)지역을 다녀오는데, 반나절 여유를 두고 와일레아 (Wailea: ‘카누 만드는 사람들의 수호신의 물’) 지역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 지역을 돌아가면, 이런 오름 풍경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