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새 이민 한인 1세대 `나는 역사다’

“시장 터에서 부름 받은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라” 한인연합감리교단 새 역사

포모나 언약 연합감리교회 엄희조 담임목사 

하와이 한인사회가 미주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이민종가로서의 새로운 문화 유산을 만들어 가고 있다.

1903년부터 뿌리 내리기 시작한 사탕수수농장 이민선조들이 물려 준 문화 유산을 터전으로 1970년대부터 이주해 온 ‘새 이민 1세’들이 이민 200년 역사 만들기 동력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동안 세정제와 마스크, 식료품을 담은 사랑의 바구니 나누기, 코로나 백신 단체 접종의 장소로 교회 시설을 개방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120년 이민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교회로서의 역할기대를 높인데 이어 2023년 11월 교회 창립 120주년을 앞두고 7월부터 포모나 언약 한인연합감리교회 최초의 로컬 여성 사역자를 세우는 새 역사를 기록했다.

해외 한인 이민장자교회의 새 역사 물꼬를 튼 엄희조 목사를 만나 보았다. <신수경기자>

남들은 은퇴를 했거나 준비하는 시점에 목회자로서 새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 특별한 감회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 나이(68세)에 담임목사 파송이라니 저 역시 믿을 수 없었다.

감리교단은 목회자 정년 퇴직이 72세이다.

3년전 로컬 목회자 과정을 마치고 기다렸다.

솔직히 목회자 부름은 기대를 하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부사역자로 은퇴하고 선교지로 가야지 하고 기도 중이었다.

그런데 지난 5월 갑자기 인터뷰 연락이 왔고 6월3일 최종 통보를 받았다.

감리교단 내에서도 이번 저의 목회자 파송이 파격적이라는 반응이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로컬 여성 사역자가 한인연합감리교회에 담임목사로 파송 되었다는 의미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는 사명감으로 앞으로 남은 시간 열심을 다 할 것이다.

이민자로서 평신도로 시작해 전도사가 되고 목회자가 되었다.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1974년 결혼으로 하와이에 이민 와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서 평신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민자로서, 1981년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실종되어 아직도 생사를 모르는 황당한 사건을 겪으며 싱글 마더로서 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다.

지금 돌아보면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님이 고비고비에 귀한 인연을 보내 주시며 이 자리까지 끌어 주시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아버지 없는 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안해 본 일이 없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박양순 씨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둑스레인에 카트를 마련하고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성 혼자 카트를 열고 닫고 하루 종일 야외에서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 버겁기 시작했다.

나도 유리창이 있는 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기도 중이었는데 당시 김웅민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전도사로 일해 볼 것을 권유 받았다.

그때가 1994년이었다. 신앙생활로 고단한 삶을 버텨내던 싱글마더 이민자가 그야말로 “시장바닥에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신학 배경도 없는 평신도 권사를 전도사로 부르시고 목회자로 세우기까지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초창기에는 ‘근본없는 전도사’라고 교인들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 교회가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마더가 불쌍해 나를 목회자로 키워 준 것이었다.

신앙심으로 심방전도사로 열심히 뛰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학교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1999년 정식 신학공부를 하기 위해 하와이를 떠났다.

신학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교회 교인들이 장학금을 지원하고 김낙인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심방전도사로 사역하며 미주 감리교 신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2009년에 하와이에 다시 돌아 왔다.

당시 하와이에 온 이유 중의 하나가 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서였는데 어머니는 아직까지 생존해 계시고 이번에 내가 목사로 하와이를 떠나는 걸 기뻐해 주시고 아이들 역시 할머니 걱정말고 떠나라고 격려해 주고 있어 안심이 된다.

부임하는 교회를 간단하게 소개해 주신다면?

나는 솔직히 우리 교회 밖에 모른다.

1978년 김웅민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 첫 개척한 교회로 역시 우리교회 담임목사님이셨던 이은철 목사님도 시무했던 교회로 많은 훌륭한 목회자들이 시무했던 교회로 알고 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특별한 달란트로 교회의 부흥을 위해 열심을 다할 것이란 각오외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이민 여성으로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인생에 어느 한 순간도 헛된 시간이 없다는 확신을 갖는다.

특히 힘든 시간을 맞았을때에 지나고 보면 그런 시간이 하나의 과정이 되어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이민 올 당시 우리 세대는 솔직히 먹고 살기 위해 왔다면 요즘 이민자들은 너 나은 환경을 누리기 위해 유학으로 또는 투자이민으로 오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세대보다 더 험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 갈 자녀들에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신앙심을 확실하게 물려 주는 것 만큼 든든한 유산은 없다고 생각한다.

뒤늦게 이 나이에 목회자로서 새 사명을 준 것 자체가 여러분에게 특히 저의 이민역사를 잘 아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용기와 위로와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나 같은 이민 여성 목회자가 더 많이 배출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