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7주년 특집기획> 삼일운동 100주년에 맞는 광복절에 즈음해 돌아보는 이민선조들의 독립운동 발자취

79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 오고 있는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의 2019  장학생 수상자들

►하와이 한인이민 100주년기념사업으로 되살려 내 앞으로 100년 한인사회 나아 갈  `길잡이’  역할  ►4.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한 지붕 두 세대’한인사회 조성 주도 116년의 이민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한인상공회의소(회장 지나 김)’는 설립 7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제이익 단체이다.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면 앞으로 하와이 한인사회가 나아 갈 길을 찾게 된다. 
116년의 이민역사를 자랑하는 하와이 한인사회는 사탕수수농장 초기 이민후손들이 6,세대까지 이어지며 주류사회 속에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는 1940년 존 김 회장을 비롯 15명의 발기인으로 ‘호놀룰루 한인상공회의소’라는 이름으로 비영리단체 등록 허가를 받았다.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 52년 약사에 의하면 ‘호놀룰루 한인상공회의소’가 발족할 당시 미국 대륙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으로 대공황기를 극복하기 위한 어려운 시기였다. 하와이에서도 사탕수수농장 이민자들인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부당한 대우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03년에서 1905년 사이 하와이에 도착한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인 15명의 발기인들은 경제이익 단체를 발족 시킨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52년 약사에 의하면 한인상공회의소 발기 취지와 목적으로 “호놀룰루에서 한인사회의 발전, 개선, 확장, 번영을 도모하고 한인 중 가난한 자를 찾아내어 돕고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한인 상권의 증진과 확대에 목적을 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등 세계 정세 등의 영향으로 호놀룰루 한인상공회의소 활동은 설립 목적대로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했다. 1970년대 이후 제3의 이민물결이 본격화 되면서 한인상공회의소 활동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1970년대 이후 이민 와 경제적 뿌리를 내린 이민 1세대들은 ‘한인경제인연합회’를 구성하고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세 경제인단체는 사탕수수농장 이민 후손들이 주축이 된 한인상공회의소와 교류하다 1978년 한인경제인연합회 83명의 회원들이 ‘한인상공회의소’ 회원으로 가입하며 두 단체는 하나가 되어 같은 목표를 향해 가기로 했다.
이민 1세 중심의 <한인경제인연합회>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분류되는 2,3세 위주의 <한인상공회의소>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 따른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지며 하와이 한인 2세들에게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데 기인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권이 다른 이들 두 집단의 통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의 진행 과정이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결과를 중시하는 측과 결과도 좋지만 그 과정을 중시하는 측으로 나뉘어 사사건건 반목하다 1세들은 <Hawaii Korean 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 로, 2세들은 <Honolulu Korean Chamber of Commerce>로 분리되어 법정싸움도 불사하며 9년여 간 서로 반목했다.
그러다 1988년 극적으로 다시 통합된다. 그 이유는 양측 단체장이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한 1세들이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로 극적으로 통합을 이룬 후 1990년 닐 블레이시덜 홀에서 한국특산품(토속공예품) 전시회를 개최하며 한국의 특산품을 소개, 판매하며 한국의 전통문화공연도 선보이는 등 경제, 문화교류의 장을 만들며 이름값에 걸맞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대한무역진흥공사는 당시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 회장단에 공로패를 수여하며 한-하와이 경제문화교류의 공로를 치하했다. 
이외에도 한-하와이 경제회의 개최, 서울과 인천 교또 상공인들과 교류의 물꼬를 트는가 하면 인터내셔날마켓 플레이스 내 한국 상인들의 권익을 위해 현지 정보를 제대로 알리고 상인들의 대변자로 그들의 목소리를 주류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영어권 회장이 부임하며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 활동은 다시 위축되기 시작한다. 
1세와 2세의 소통부족은 결국 한인상공회의소 발전에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두 단체는 서로 반목하면서도 장학사업을 비롯한 후손들을 위한 교육사업은 뜻을 같이하며 행사를 이어 온 결과 장학사업은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2002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 기념사업의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위해 코리안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는 페스티벌 주최 단체로 한인사회는 물론 지역사회에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한국의 경제력이 급부상하고 한류열기가 뜨거워짐에 따라 하와이 한인사회 경제력 신장을 주도해 갈 경제이익 단체로서의 한인상공회의소 역할기대는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1세와 2세로 나뉘어 오롯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반쪽 짜리 단체로 덜컹거리는 굴렁쇠를 연상케 한다. 이 모습은 하와이 한인사회 자화상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하와이 한인사회는 17회 코리안 페스티벌을 부활시키며 온전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순조롭게 굴러 가는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 한인사회 조성을 위한 커뮤니티 전반적인 체질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고 정체성 있는 1.5세 차세대 리더들의 발굴이 시급하다. 
한국과 하와이를 연결할 수 있는 징검다리로서의 1세들의 역할과 주류사회와 한인사회를 연결할 수 있는 2,3세 차세대 리더들의 역할이 잘 조화를 이루며 ‘한 지붕 두 세대’ 체재를 잘 고수하는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 한인커뮤니티 를 조성해 갈 때 미주한인 이민종가로서 이민 200년 역사를 주도하는 하와이 한인사회의 위상을 유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