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기념 특집기획] 하와이 ‘길’ 이름 속에서 이민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1월13일은 미주한인 이민 116년의 역사를 기리는 ‘코리언 아메리칸데이’로 하와이에서는 미주한인재단 하와이(이사장 편장렬) 주최로 기념식과 기념만찬, 역사탐방 프로그램 등이 펼쳐졌다. 
특히 올해 3.1절 100주년에 맞는 미주한인이민116년 기념식은  1903년 사탕수수농장 이민선조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더욱 더 선명하게 살려내고 있다. 
본보는 뜻을 같이하는 하와이 역사문화단체들과 손잡고 하와이에서 맞는 3.1절 100주년의 의의를 되새기며 하와이 길 이름 속에서 이민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 칼럼은 2008년에 발표했던 것에 한인 이민과 특히 3.1 운동 당시 하와이 이민선조들이 보여 준 역사적 현장을 찾아 관련된 이야기들도 보충했다. 
이를 통하여 하와이에 살고 있는 한인들 뿐만 아니라, 하와이를 찾는 한국인 방문객들이 하와이 한인 이민역사를 정확하게 재미있게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1. 비숍스트릿(Bishop Street) 호놀룰루 다운타운(중심가)에 있는 비숍 스트릿(Bishop Street)은 카메하메하왕가의 버니스 파우아히 공주(Princess Bernice Pauahi)의 남편 찰스 리드 비숍(Charles Reed Bishop)을 기린 이름이다. 
 그는 지금의 퍼스트 하와이언뱅크 (First Hawaiian Bank)의 전신인 비숍은행을 설립했고, 카메하메하학교재단인 비숍재단도 세운 유명한 기업가였다. 
 버니스 파우아히 공주는 1810년에 하와이 왕국을 통일한 카메하메하대왕의 증손녀로 1831년에 출생하였다.  그가 출생했을 때 하와이 원주민의 수가 12만 4,000명이었는데, 유언장을 작성한 1883년에는 4만4,000명으로 감소했다. 
 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교육을 받은 파우아히 공주는 평생 동안 하와이 원주민 수가 감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을 마음 아파했다.
 1883년에 파우아히 공주는 교육만이 하와이 원주민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에서 하와이 원주민을 위하여 카메하메하학교 설립을 위한 유언장을 작성하고, 집안에서 유산으로 받았던 모든 땅 (하와이 전토지의 9%)을 이 학교재단에 기부하기로 하였다. 
 이듬해 파우아히 공주가 53세로 타계하자 남편 비숍이 재단을 설립하고, 1915년에 타계할 때까지 재단 이사장으로 활약하였다. 물론, 자신의 재산도 기부하였다.   
 이 재단은 1887년에 현 비숍박물관 자리에 남학생을 위한 카메하메하학교를 설립했고, 1894년에 여학교를 인근에 따로 설립하였다. 
 1955년에 두 학교를 통합하여 지금의 카팔라마 하이츠 (Kapalama Heights)로 이전하였다. 
 카메하메하 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학제로 하와이 원주민의 혈통이 증명되는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다.
 1935년에 김태순이라는 한인 학생이 졸업하였는데, 어머니가 하와이 원주민이었다. 
 한인으로 하와이 원주민과 결혼한 것을 신문에 밝힌 이는 1914년 5월에 결혼한 박종운이며, 그 후 하와인 원주민과 결혼한 한인들이 종종 있었다. 비숍 家와 한인들의 관계는 찰스 비숍의 사촌 에벤 팩손 비숍Eben Faxon Bishop)에서도 볼 수 있다. 
 에벤 비숍은 한인들이 하와이로 이민 오는 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에벤 비숍은 C. Brewer 회사의 이사였고, 하와이 사탕수수경작협회의 노동분과 위원이었다. 
 1902년 10월 초에 한인 노동자들을 데려 오는 준비 작업을 하기 위해 서울(당시 경성)에 도착하였다.
 동서개발회사의 데쉴러 사장 집에 머물면서 미국 공사 앨렌 (Horace Allen)을 만나, 한인 노동자들을 하와이에 데려가기 위해 의기투합하였다. 
 그는 첫째로 한인 노동자들이 3년 이내에 귀향하는 등 문제를 일으킬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사탕수수경작협회에 알려 안심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는 한인들의 ‘불법입국’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하와이로 전세 배를 이용하지 않고 상선을 이용하도록 하는 등 준비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당시 하와이는 이미 미국의 영토로 되어 있었고, 미국 법에 의하여 계약노동 이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인들은 정식 계약서 없이 하와이에 도착한 것이다. 법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준비 작업을 잘 끝낸 에벤 비숍이 일본으로 가서 며칠 쉬고 있는 동안 12월 22일 인천에서는 첫 이민단을 실은 배 현해환 (켄카이마루)이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떠났다. 
 비숍은 1월 2일 호놀룰루로 돌아와서 C. Brewer 회사뿐만 아니라, 사탕수수경작협회로부터 치하를 받았다. 
 한인 이민단은 1월 2일 나가사키를 떠나 1월 13일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