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70주년 맞아 한미 관계 속 `하와이’ 역할기대 부각

3일 한국학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실비아 장 룩 부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수잔 럼 EWC소장, 홍석인 총영사, 백태웅 소장, 에드워드 슐츠 회장(왼쪽부터)

EWC, CKS, 총영사관
역할 모색 세미나 개최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한미 양국에서 다양한 기념 행사가 개최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는 ‘한국과 미국 한미관계에서의 하와이 역할’이란 주제로 특별 세미나가 열렸다.

동서문화센터(EWC),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주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실비아 장 룩 부지사와, 수잔 럼 동서문화센터 소장, 백태웅 한국학연구소장, 홍석인 총영사, 에드워드 슐츠 한미재단 하와이 회장이 패널로 나와 주제 발표를 했다.

이날 백태웅 소장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맞물려 행사를 개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직면하고 있는 국제현실 속에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찾아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짚어 나갔다.

백 소장은 평화를 구축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보다 나은 경제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한미관계, 그리고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협력을 촉진하는 데에 한국과 하와이의 관계가 핵심적인 역할임을 강조했다.

백소장의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20년 전 하와이로 건너온 7400여명의 한인 이민자들은 현재 약 200만명의 미주 한인 인구로 성장했고 이 중 5만2,000명 이상의 한국계 미국인이 하와이에 살고 있다.

하와이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 중 하나이다.

하와이는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주둔하는 곳으로 양국 간의 강력한 군사 협력은 한-하와이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둘째, 한국학연구소는 한국과 하와이의 중요한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로 1972년 설립된 한국학연구소는 미국과 북미의 한국학을 선도해 왔다.

한국학 분야는 19세기 서양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으며, 주로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20세기에는 점차 여러 세대의 학자들이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 대전 및 전후에 언어와 역사, 정치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아시아학회는 1967년 하와이대 교수진을 주축으로 한국분과위원회를 발족했고, 그 후 하와이 대학교는 1972년 오아후에 한국학센터를 설립했다.

한국학연구소 건물은 1974년부터 1980년까지 지어졌으며, 한국과 하와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념물이다.

건물 뒤편에는 센터 건립에 얽힌 이야기를 읽어 볼 수 있다.

한국학연구소 건립 기획 당시 예상 비용은 45만 달러로 한국과 미주 모금액 각각 20만 달러와 25만 달러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종 공사비는 151만8,716달러로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다.

다행히도, 한국에서 59만8,667달러, 하와이와 미주 한인 사회에서 42만6,221달러, 하와이 주에서 52만3,054달러의 모금액을 마련하여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한국과 한국계 미국인 사회, 하와이 주가 3분의1씩 비용을 댄 것으로 한국학연구소 건물은 한국과 하와이 문화 교류의 좋은 예시이다.

이 건물에는 약 47개의 한국 관련 수집품이 있으며, 이민연구와 역사연구를 위한 기록보관소 및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한국학연구원을 찾아 두 여성 애국지사의 후손들에게 공로훈장을 수여한 바 있다.

이는 선조들의 봉사 및 역사적 사건사실을 발굴한 한국학연구소 학자들의 연구에 기인한 것이다.

한국학연구소는 한인 인구에 대한 비전을 살피며, 미국 및 세계에서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할을 탐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셋째, 하와이 한인들은 현재 한국 정치 구조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10년 한국에 일제강점기가 닥쳤다. 해외 한인단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하와이 한인회도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적극적인 독립의지를 표명했다.

1909-1910년 초 대한국민회는 신문을 통해 민주주의와 미국식 공화주의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3월1일 대한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 1919년 북미 하와이 한인사회의 핵심 지도자 중 한 명인 이승만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승만은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항상 부지런하고 함께 일한다.

대한국민회는 1909년부터 대한국민신문사를 시작으로 퍼시픽 위클리 등 조선신문을 발간했다.

또한 The Young Korean, The American Korean을 영어로 출판했다.

한국학연구소는 현재 이러한 한국 신문을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와이 한국 언론으로는 한국일보 /라디오 서울 하와이 지사와 KBFD방송국이 있다.

하와이의 한국 매체들은 한국과 하와이 간의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학연구소에서는 지난 50년간 발간된 한국일보 신문을 디지털화하고 있으며, 추후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과 하와이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하와이가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기원과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대화가 계속되길 바란다. <정리 김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