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와이와 함께하는 `반세기 하와이 새 이민사 정리’ (4)

와히아와 한인교회 새 사역 올리브 연합감리교회

1952년 이민법으로 아시아인이 미국시민이 될 수 있었고, 초기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살기 시작한지 50년만에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이 이민법은 17개 아시아 국가 당 2,000명이 이민올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할라 함 이후 미군 부인들이 하와이에 올 수 있었다.

호놀룰루에 도착한 미군 부인들은 스코필드 군영 소속 남편과 함께 온 이들이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몇명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와이하와 올리브연합감리교회의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올리브연합감리교회 (1907년 초 예배 시작) 는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처럼 사탕수수농장에서 시작되지 않은 초기 이민 교회이다.

와히아와에는 사탕수수농장이 없었기 때문에 초기 이민자들은 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제임스 돌 (James Dole)이 1901년에 와히아와에서 시작한 파인애플 재배가 성공하면서, 와히아와 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소식이 전해지면서 1907년부터 한인들이 사탕수수농장을 떠나 파인애플 농장으로 옮겨왔지만,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1909년부터 스코필드 군영이 건설되고 군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와히아와 타운이 본격적으로 성장하였다.

1921년에 스코필드 군영이 하와이 지역의 보병 사단으로 확장되는 (1942년에 육군 25 보병사단으로 됨) 동안 군영에서 발주하는 일은 일본인과 중국인이 차지하였다.

2,3년 후 중국인들이 물러나고, 또한 일본인들이 군영내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군복 세탁과 수선 등 군영과 관계된 일은 완전히 한인의 몫이 되었다.

더구나 사탕수수농장을 떠나는 한인들이 이곳으로 몰려 오면서 와히아와가 그야말로 코리안타운이 되었다.

잘 알려진 문대양 하와이주 대법원장이 와히아와 출신이다.

1919년 초에 와히아와 한인기독교회도 설립되어 한인기독교회는 “윗동네 교회”로, 감리교회는 “아래 동네 교회”로 불려졌다.

1975년 7월 1일에 올리브연합감리교회에 부임한 데이비드 김 (사진 김창환) 목사에게 새로운 사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리브교회의 초기 이민 교인들이 거의 다 타계하여 영어권 교회가 되면서, 1965년 김성회 목사 이후 영어권 목사가 목회해 왔다.

그동안 새 이민자 특히 미군과 결혼한 가족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미군과 결혼한 부인들은 미국 시민이 되면서 부모와 형제들을 초청하여 왔다.

‘미군과 결혼한 부인 1명이 평균 20명 정도의 친정 부모 형제 식구들을 데려왔다’는 이야기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미군 부인들의 정착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가정 문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문제도 많이 일어났다.

올리브교회는 1970년도 중반부터 이들을 위해 가정상담 사역을 시작하였고, 김창환 목사는 1977년에 “한인가정상담소” 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운영 예산은 연합감리교회 뉴욕 본부와 하와이지방 그리고 올리브교회가 담당하였고, 미육군 본부 군목실에서도 보조해 주었다.

올리브교회 소속기관이었지만, 스코필드 미육군 25보병사단 군목, 와히아와 성공회 신부, 천주교 신부, 그리고 몇명의 올리브교회 교인이 범 교파적으로 운영하였다.

1987년 7월 김성회 목사의 12년 목회가 끝날 때까지 한인가정상담소를 거쳐간 사람은 수천 명에 달하였다.

<연재를 마치면서>

벌써 반 세기가 넘은 새 이민사의 몇 면을 소개하였습니다.

지난 30년동안 초기 이민사 자료 수집, 정리 등에 주력하면서 새 이민사 정리는 후배의 몫으로 남겨 두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한국일보 하와이가 내년 창간 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1세들의 취재 기록과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고 하니 한인사회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며 함께 동참해 가야할 것입니다.

2023년은 미주한인이민 120주년으로 한인사회가 합심해 이제 새 이민사 정리를 위해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1972년 8월 26일부터 발행된 하와이판 한국일보가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기증되어 있지만, 1974년 4월부터 발행된 중앙일보는 없습니다.

혹시 보관하고 있는 분이 계시면 한국학연구소에 기증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인 단체들과 각 교회와 사찰등도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하길 바랍니다.

또한 1983년에 하우회가 발간한 한인록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발간되는 한인록이 한국학연구소에 소장되어 있으면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옛날에는 사진기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진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앞으로 사진 자료가 남겨질 가능성이 더 적어진 셈입니다.

또 찍은 날짜는 저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사진설명이 제대로 기록에 저장되지 않아 역사기록물로서 보전을 위해서는 동포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찍은 날짜와 어떤 행사였는지 또 찍힌 인물들이 누구인지가 밝혀 있지 않은 사진은 그야말로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기록을 위해 꼭 기록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