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민족과 유전자

강창범 기자

기자는 하와이로 이민와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친 후 한인사회와 교류 없이 지내다 지난 연말부터 한인 언론사에 발을 디딘 흔히들 말하는 한인 1.5세이다. 2월 초 와이파후 플랜테이션 빌리지 음력 설 잔치 취재를 갔는데 그곳에 ‘한국관’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던 기자는 ‘한국관’의 빈약함에 기대도 않던 실망을 했다. 게다가 한국문화행사에 참여하는 이들도 한인보다는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타민족들이 더 많아 놀랐다.‘민족’이라는 단어를 여러 사전에서 찾아보면 언어, 역사, 전통 같은 문화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을 뜻한다.  혈통에 관한 언급은 없다. 여기서 문제: 민족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은 얼마인가? 답: 한 세대.냉전이 한창일 때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은 말했다. “자유는 절멸되기까지 한 세대가 채 걸리지 않는다(Freedom is never more than one generation away from extinction).” 민족성도 마찬가지이다.진(gene: 유전자)은 신체적 유전정보를 전달한다.  문화적 유전정보인 밈(meme)은 부모나 자라나는 지역사회에서 세습된다.   미국에 있는 한인 3, 4세들은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고 할 때가 많은데 이들은 한국인의 진(gene)은 있지만 밈(meme)이 없는 경우이다.기자로 일을 하며 하와이가 ‘미주한인 이민종갓집’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나 이민역사에 있어 가장 상징적이어야 할 ‘한국관’은 ‘이민머슴집’처럼 보였다. 토니 리 한국관 관장과 음력 설 행사 때 마다 한국관 안내를 도운 고가현자 선생은 부족한 자금지원과 동포사회 관심 부족이 와이파후 플랜테이션 빌리지 설 잔치 행사 준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고 하소연했다.한인 단체도 2개의 한인회 가운데 하나의 한인회만 참여했다.자금지원과 관련해 기자가 영사관에 문의하자 담당 영사는 “한국관 관련한 사업담당자가 자금지원신청을 작년에 아예 안 했고 올해 신청된 자금지원은 3월 중순 서울에서 심사를 거친 후에야 나오는 것”이라고 답했다.‘내 탓이오 네 탓이오’ 하기 전에 자금보다 가장 큰 문제의 본질은 한국관 설 잔치에 대한 한인사회의 전반적인 `무관심’이다.쇠똥냄새 가득했던 기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보면 밀려버린 산과 덮여버린 강 위로 아파트 숲이 조성되어 유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변해버렸다.  이런 이유로 기자는 유년의 기억이 부정되는 한국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기자가 한인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많은 하와이 한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도 하와이 한인사회가 분열되어 있음을 피상적으로나마 알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치른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피폐해진 한국을 보고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 나라는 백년이 지나도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1955년 10월 비참한 한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벤가릴 메논 유엔한국재건위원회 인도대표는 “쓰레기통에서 과연 장미꽃이 피겠는가”며 한국의 미래는 가망이 없음을 시사했었다. 기자가 지난 3개월여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본 하와이 한인사회도 화합하고 결집해 이민종갓집의 위상을 자켜 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훗날 맥아더와 메논처럼 기자의 생각이 틀렸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