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역사다] 박봉룡 회장 23대 하와이 한인회

“1947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어요. 20대에도 너무 수줍음을 잘타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병대에 자진 입대하고 월남전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어요. 선장으로 미국에 이민와 하와이에 정착하기까지 지난 70여년의 삶을 돌아보면 성령이 함께하지 않으면 오늘의 내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며 살고 있는 요즘입니다”

결혼해 한 살 된 딸과 부인을 남겨두고 1976년 100달러를 쥐고 홀홀 단신 선원으로 취업이민 온 박봉룡 23대 하와이 한인회장. 20대와 21,22대 한인회, 문화회관건립추진위원회가 얽히고 설켜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던 시기에 ’23대 하와이 한인회장’으로 무투표 당선 된 박봉룡 회장은 22대 한인회가 물려 준 문화회관건립추진위 소송을 취하하고 한인사회 화합의 물꼬를 틀 것이란 기대감 속에 내년 6월이면 23대 한인회장 임기를 마치게 된다.  박 회장의 하와이 이민생활은 신앙간증 그 자체이다. 하와이 유명 선박회사 선원으로 취업이민 온 박 회장은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한 후 가족들과 하와이에서 상봉한 후 피자가게, 식당, 리커스토어를 하며 큰 돈을 벌어 안정된 생활을 했다. 1986년부터 박 회장은 해병전우회장으로 한인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런데 한국과 하와이에서 믿고 투자했던 부동산이 한 순간에 먼지처럼 사라지는 ‘사기’ 경험을 겪으며  그동안 손에 쥐었던 재산을 날리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생즉사 사즉생’ 이순신 장군의 좌우명을 되새기며 새롭게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파산선고를 하지 않고 차근차근 빚을 갚아가며 신용을 지켜나가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물질적으로 자유로움을 얻게 되었다. 그 즈음 한인사회에서 그를 다시 찾기 시작했고 다시 한인사회를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자유총연맹 하와이지부를 새롭게 조직하며 다시 커뮤니티의 부름을 받아 2015년 23대 하와이 한인회장에 취임했다. 박 회장은 이민교회의 내분을 지켜보며 신앙인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지켜가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한 후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사명을 확고히 깨닫았다고 전한다. 수산계 학교를 졸업하고 어부를 직업으로 선택해 미국생활을 시작했지만 결국 사람을 낚는 어부로 목회자가 아닌 신앙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가길 원한다는 박 회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23대 한인회장으로서의 역할도 결코 인간의 의지로만 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저에게 주어진 역할 속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뜻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내년 회장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제가 기도하고 약속했던 일들을 모두 이루는 능력을 주실 것으로 믿고 열심히 노력해 갈 것입니다” 박 회장은 어려움에 직면했던 인생 고비고비를 돌아 보면 항상 ‘동역자’자가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전한다. 지난해 하와이 독립문화원의 일방적인 매각을 한인회장으로서 지켜보면서  “선조들이 물려 준 것을 지켜내지 못한 후손으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한 마음”이었다고 고백한다. 115년의 이민역사를 자랑하는 하와이 이민종가 한인회장답게 선조들이 물려 준 유산은 물론 후배들에게 떳떳한 이민선배로서 뜻깊은 족적을 전하기 위해 남은 임기동안 열심히 기도하며 주어지는 역할기대를 충분히 수행해 가기 위해 노력해 갈 것이라고 포부를 전한다. “100달러 들고와 정말 열심히 살았지요. 제 선친이 69살에 돌아가셨어요. 저는 이제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고 손자, 손녀들을 돌보는 할아버지 마음으로 한인사회를 위한 봉사활동도 최선을 다해 해 보려고 합니다. 저의 이런 활동이 이웃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