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우리’ 시리즈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이 땅에 서있는 우리는… 그 속의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미주 한인이민 116주년’…… 100년이 넘는 역사의 무게만큼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내딛는 오늘의 한 발자국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코리안 아메리칸, 한국계 미국인으로 불리며 이 땅 하와이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는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이며, 미래의 우리는 어떤 한국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3.1절 100주년을 맞은 하와이 한인사회가 3.1절 200년 역사를 만들어 갈 우리 후손들을 위해 ‘한국인, 우리’ 에 대해 고민하고 그 길을 찾아가는 한인들의 시리즈를 이어간다.     <편집자주> 

1. 전후석 감독쿠바한인 다큐멘터리‘헤로니모(JERONIMO)’ 제작

“안창호 선생이 미주지역의 한인사회 정신적 지도자였다면 쿠바 한인들의 정신적 지도자는 ‘헤로니모 임’(한국명 임은조)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쿠바의 안창호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뉴욕 KOTRA 무역관 변호사로 활약하다 우연히 여행길에 오른 쿠바에서 운명처럼 애국지사 임천택 선생의 손녀를 만나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전후석 감독을 만나 보았다.
 전 감독은 미국 유학 길에 오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3살 때 한국으로 돌아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다. 
 그 과정에서 전 감독은 “주류가 아닌 소수민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혼란을 겪게 되었고 1994년 LA폭동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한국밖에서 한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 미국에서 어떤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전 감독은 이런 고민 속에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한인 청년들을 만나며 그들의 고민을 듣게 되었고 미국이나 독일이나 조선족이나 한국이 아닌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 우리 모두는 공통적으로 소수민족으로서 주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전한다.
 “연변에서 만난 조선족 친구가 자신을 사과배라고 소개했어요. 사과와 배를 접목시켜 연변에서만 생산되는 사과배는 조선족 친구가 보기엔 사과도 배도 아닌 과일이고  연변에서 거주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이 과일과 같다는 것인데 큰 공감을 하게 됐다”고 기억한다.
 전 감독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애국심과 국수주의의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자존감을 찾기 위한 과정,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한 자아개발, 자아 확신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특히 전 감독은 “정체성은 거주 지역과 문화를 초월해 얼마나 더 많은 ‘우리’를 아우를 수 있는가 고민하는 것”이라며 “한국의 경우 혼혈인, 입양인, 재외동포는 한국인이 아니고 심지어 북한 탈북자도 한국인이 아니라는 시각이 존재 하는데 이것이 심화되어 한국인에 대한 정의가 축소될수록 자기파괴적인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울러 한국인이라면 재외동포들이 주류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해 견디어 낸 고통을 헤아려 줄 수 있기를 소망했다.

전 감독이 쿠바 한인 임은조 선생의 다큐 제작에 몰두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100% 순혈 한국인이 없는 5~ 6세대까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 애정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이 경외스러웠기 때문이란다.
 쿠바 사탕수수 이민자들의 후손인 4-5세대는 혁명세대이자 사회주의 세대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사상아래 민족적 정체성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됐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1960~1990년대 까지는 한국말을 사용할 수도 없었고,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학교도 모두 사라지게 됐다. 
 그럼에도 헤르니모 임은 한글학교를 세우고 쿠바내의 한인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기념비를 세우며, 여동생인 마르타 임으로 하여금 ‘쿠바의 한인들’이라는 책을 발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한인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이었다. 
 쿠바 이민 1세대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여 1997년 8월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던 고(故) 임천택 선생의 장남 헤로니모 임(임은조)은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혁명의 선봉에 섰던 주역 중 한 명이자, 한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최고위직인 혁명정부 식량산업부 차관급까지 올랐던 역사적인 인물로 1988년 30년간의 공직생활에서 퇴임 한 뒤 쿠바 한인사회 재건을 위해 땀을 흘렸던 지도자다.
 전 감독은 쿠바 한인들이야 말로 해외거주 우리 한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다. 
 전 감독은 자신의 다큐를 통해 “조국을 잊지 않고 한인이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집착과 노력에 대해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은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