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기념 특집기획] 하와이 ‘길’ 이름 속에서 이민선조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이덕희 하와이 이민사연구원

대한민국 주 호놀룰루 총영사관이 자리 잡고 있는 팔리 (Pali: ‘벼랑’ 이라는 뜻) 하이웨이는 1957년에 개통된 고속도로이다.  이 길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 19세기 초에는 호놀룰루에서 윈드워드(Windward: 바람이 많은 곳) 지역으로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카누를 타고 섬을 돌아가거나, 칼리히계곡을 타고 올라가 밧줄과 사닥다리를 동원해 가파른 벼랑을 넘거나, 또는 누우아누 (Nuuanu: ‘시원한 언덕’) 지역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누우아누로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는데, 그 길은 물론 지금처럼 잘 닦이고 완만하게 돌아가는 길이 아니고 말 그대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끼고 도는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길에, 특히 밤에 화산 여신 펠레 (Pele)가 나오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던져 주어야 통과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미국인으로 제일 먼저 이 누우아누 길을 지나간 사람은 윈드워드로 전도여행을 간 하이람 빙햄 (Hiram Bingham) 목사였다.  빙햄 목사는 1829년 최초로 하와이에 도착한 선교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후에 하와이 왕족으로부터 푸나호우 학교 부지를 불하받았다.  호놀룰루 시내에 그의 이름을 딴 빙햄 스트릿이 있다. 1845년에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이 가파른 낭떠러지에 길을 냈는데 개통식에는 카메하메하 3세와 의학박사이며 총리대신인 저드 (Dr. Gerrit Parmele Judd)가 말을 타고 지나갔다.  저드 박사는 의료 선교사였으며, 그의 이름을 딴 길이 누우아누 지역에 있다. 이 길을 1898년에 넓혔고, 그후 자동차가 다니게 되었다.  지금의 팔리 하이웨이는 1952년 3월 20일에 공사를 시작해 두 개의 터널을 뚫는 난공사 끝에 5년만인 1957년 5월 11일에 준공했다.

호놀룰루에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설립된 것은 1949년 4월이다.  김영섭 초대 총영사가 호놀룰루에 도착하여 오아후 애버뉴 2366번지의 집을 임대하고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김영섭 총영사는 이승만 박사가 프린스톤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YMCA 한국인 총무로 활동하는 동안(1910-1912)에 이승만 박사와 만났고, 1920년 세계감리교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총회 후에 워싱톤의 구미위원부에서 이승만 박사를 도우며 일하다가 1925년에 귀국하여 1927년부터 1934년, 그리고 1938-1943년에 정동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다.  김 총영사가 부임하였을 당시는 대한민국의 재정 형편상 총영사관을 구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지회 회원들이 솔선하여 모은 성금 약 2만2,000달러로 1949년 10월 25일에 해신저 (Hassinger) 스트리트 1133번지의 가옥을 구입하고, 1950년 4월 4일에 이 집을 총영사관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대한민국에 기증하였다.  김영섭 총영사는 11월에 귀국하였다.  5대 총영사 김세원 (1961-1969 재임)이 1965년에 이 집을 팔고, 대한민국 정부 예산을 보태어 지금의 총영사관을 구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