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종가 하와이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며 새 이민 세대 맥을 잇는다 “

세계와 소통하는 3인 여성, 3 <무지개 나라의 유산> 이진영 감독

-하와이 새 이민 1세로 하와이 이민역사를 세대를 아우르며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하와이로 이민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기 소개를 부탁합니다.

이십대 중반에 처음 방문한 하와이에 반해 결혼과 함께 무작정 이민을 왔습니다.

지난 이십여년 한국일보 하와이 지사의 기자를 거쳐 한인 방송에서 기자와 아나운서로 일했고, 하와이관광청 한국 사무소 공식 크리에이터로 하와이 일상에 대한 브이로그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다큐멘터리 연작 ‘무지개 나라의 유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두 번의 큰 도전을 했는데, 첫번째는 스물 네 살 때 태평양 너머 이국의 땅으로 이민을 간 것이고, 두번째는 하와이 한인 이민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영화 ‘무지개 나라의 유산’ 에서 하와이 이민자의 삶을 진솔하게 조명해 하와이국제영화제 뿐 아니라 중국, 인도, 스웨덴, 그리고 한국의 영화제와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요.
기자로 시작한 커리어가 어떻게 영화 감독으로 이어지게 된 건지요.

우연히 알게 된 하와이 한인 이민사는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어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하와이에 십 년 넘게 살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려하지도 않았던 스스로의 무지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특히 자라나는 어린 친구들과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고고학자는 유물과 문화재를 발굴하고 역사학자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연구하고, 소설가는 픽션의 형식으로 역사를 이야기하고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방송 경험도 있으니 인터뷰를 해서 책으로 엮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인연들을 만나면서 영화라는 장르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어떤 놀라운 인연이 있었나요?

영화는 책 작업과 달리 수많은 사람의 공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보니 최소의 자본 없이는 시작을 할 수 없는데요, 대략적인 구성과 인터뷰이를 결정한 상황에 주 호놀룰루 총영사관에서 주최하는 디지털 공공외교 공모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운 좋게 당선되었고 그 덕분에 업계 최고의 촬영감독과 편집감독과 협업할 수 있었습니다. 또 출연자들도 제작에 크게 기여해주셨지요.

프롤로그편에 주연 급으로 출연하신 분이 두분 있어요(웃음).

이덕희 선생님과 백태웅 한국학센터 소장님이 그 두 분인데, 제가 정말 수시로 연락 드리고 재촬영도 여러번 잡았는데 짜증 한번 안 내셨어요.

그밖에도 본편에 출연해주신 다섯 분의 인터뷰이를 포함해 한인 커뮤니티의 너무나 많은 분들이 지식과 시간,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셨습니다.

순제작 기간만 1년이 넘어가다보니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는데 총영사관에서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박지은 영사와 홍석인 총영사님께서 믿고 지지해주셨던 것 또한 정말로 큰 힘이 되었어요.

수많은 분들의 마음과 힘이 모여 ‘무지개나라의 유산’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로 다큐 감독 이진영으로 하여금 작품활동을 하게 하는 동력이랄까요?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사연구소 선생님께 제가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교수나 학자가 아니니 논문을 써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연구비를 대주는 것도 아닌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한인 이민사 연구에 매진하고 계시냐고요.

그 때 선생님의 대답을 잊을 수 없어요. 우동을 드시고 있었는데 국수 자락을 들어올리면서 무심하게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재밌잖아!”

그 때는 웃고 넘겼지만, ‘무지개 나라의 유산’을 제작하면서 ‘재미’가 일을 하는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큰 동력이 되는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역사 속 숨겨진 이야기를 찾고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가는 일련의 과정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지요.

이민 선조들의 이야기 속에 나의 이야기가 있고 우리의 이야기 속에 또한 선조들의 이야기가 중첩되기도 하는 순간을 발견할 때면 감동이 밀려오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했고요.

또 한편으로 저는 좋은 이야기에는 차별과 혐오, 증오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데에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을지 모른다는 믿음이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쓴 자신의 글이나 읽은 글, 다큐 인터뷰 가운데 가장 잊혀지지 않는 문장이 있는지요? 있다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해리 김 전 빅아일랜드 시장님에게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질문을 했을때였어요.

그 분은 민방위국 수장으로, 3선 시장으로 늘 막중한 책임 하에 일해온 분이니 스트레스 관리에 일가견이 있겠다 싶었지요.

시장님은 이렇게 답했어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정말, 최선을 다한다면, 스트레스는 없어요. 언제 어느 때라도, 세상에는 반드시 나를 오해하고 내가 하는 일을 비난하는 누군가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건간에, 시간을 되돌린다해도 다르게 할 수 있는게 없다 싶을 정도로 내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자신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는 없지요.” 그 말씀이 울림이 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편의 주인공 데이지 양 작가가 쓴 <금강산의 보라부인>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요.

“고통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거라면 네 어미에게 도움을 받아라. 네 어미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너를 낳았다.

어미의 사랑이 네 가슴 속에 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랑이 모든 해악으로부터 너를 보호할 것이니 어미의 희생을 생각하며 힘을 내고 용기를 갖도록 해야 한다.”

이 이야기 속 ‘어머니’의 모습에서 저는 이민 선조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필연적으로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모든 언어와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다음 세대에게로 이어지지요.

우리가 받은 사랑을, 그 큰 빚을 갚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문득 고민하게 해준 글입니다.

-자신의 활동으로 어떤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지요?

변화까지 이끌어낼 만큼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웃음).

하지만 감독으로서 꿈이랄까, 바람은 있습니다. 얼마전 그리스도 연합 감리교회에서 있었던 상영회에 오신 하와이대 경제학과 이상협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분이 한국학센터 소장을 하던 시절 한국학발전 기금으로 기부하는 분들을 비롯해 다방면에 여러 선행을 펼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좋은 분들과 자꾸 어울리다보니 자신도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도 제작하며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물으셨는데 정말 공감했어요.

제작하며 맞닥뜨린 크고 작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 수 있었고, 또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하게 될 가장 큰 원동력은 좋은 사람들의 좋은 이야기는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건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서 돈이나 명예처럼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보상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만족감과 기쁨을 주더군요.

보는 사람에게도 그런 에너지가 전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하와이 이민선배 여성으로 후배 여성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조언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와이에 와서 이민자로서의 삶에 적응하는데 실질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맥컬리 도서관의 한국어코너입니다.

아무리 영상의 시대라고 해도, 책, 그 중에서도 문학만큼 세상과 깊이있게 교감하게 해주는 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답답할 때, 맥컬리 도서관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도 인간의 고민이나 외로움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