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나라의 유산> 힐로 상영회를 마치고, 이진영 <무지개 나라의 유산> 감독

하와이 이민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연작 ‘무지개 나라의 유산’이 힐로의 주민들을 만났다. 

영화는 지난 10월부터 올 봄에 이르기까지 제 41회 하와이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해외 관객을 만났다. 

그러나 하와이 주민들에게 선보인 건 올 초로, 해외 상영은 온라인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았던 데 반해 하와이 상영은 주 호놀룰루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후원 덕분에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영화를 관람하고 상영 후 자유로운 대화의 시간도 나눌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의미가 있었지만, 완성된 영화를 상영하며 관객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제작과는 완전히 다른, 또 다른 배움과 깨달음의 여정이다. 그 사실을 상영회를 할 때마다 매 번 새롭게 깨닫는다. 

오아후와 마우이 상영에 이어 지난 금요일(29일), 빅 아일랜드에서 마지막 공식 상영이 있었다. 

하와이 대학교 힐로 캠퍼스에서 열린 이 날 상영회는 특히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영화 때문이 아니라 해리 김 전 빅 아일랜드 시장님이 살아온 시간 덕분이었다. 

다른 지역에서의 상영회에서는 다큐멘터리 요약본을 상영했지만, 빅 아일랜드에서는 해리 김 시장님의 에피소드 전체를 상영했다. 

100여명의 관객 중 한국인은 반도 안되었던 것 같은데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빅 아일랜드 같은 커뮤니티에서 36년이나 공직에 있던 시장님의 이야기는 곧 그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Q&A 시간. 한 여성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힐로 주민인 자신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어디서도 마이크를 든 적이 없지만 시장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했다. 

오래 전 해리 김 시장님이 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자신은 시청의 말단 직원이었는데 당시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자신을 외면했던 때 아무일 없던 듯 인사를 건네고 웃어준 사람은 시장님이 유일하다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왔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이들이 그녀를 따라 눈물을 흘렸다.  

“I am the same age as Mayor Kim.” 나는 해리 김 시장님과 동갑입니다,라는 말로 운을 뗀 어느 한국인 할아버님도 있었다. 

그는 시장님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라고 말하며 감정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여든 두 살의 한국인 남성이 공개석상에서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다만 그 이면에 깃들어 있는 어떤 아프고도 슬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덩달아 눈물이 흘렀다. 

나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많은 이들이 그랬다. 후에 보니 그는 힐로에서 사십여년을 산 박 훈 소아과 전문의였다.

현 미치 로스 빅 아일랜드 시장도 상영회를 찾아 해리 김 시장님에게 존경을 표했고, 다른 관객과 나누고 싶다며 방금 딴 파파야 한 박스를 가져온 분도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해리 김 시장을 영웅시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 분이 카운티 민방위 국장으로 24년, 3선 시장으로 12년 36년 공직 생활 동안 얼마나 정직하고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상영회를 찾은 해리 김 시장님과 부인, 아들, 누이 부부는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