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한국일보 하와이 창간 45주년 특별 기획 한미재단 하와이 후원

해외에서 우리 음악연구 반세기, 국악 세계화에 앞장

지난 반세기 하와이대학교에서 ‘한국음악’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이병원 교수(75). 한국음악에 관심 있는 해외 음악도들이라면 그의 제자가 되길 소망한다.
하와이대학교 민족음악학과의 이 교수는 “민족음악이란 한 민족의 음악이 그 사회와 문화권 내에서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7월 중순에도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서 우리의 가락 아리랑의 정치학 분야에 관해 민족음악 권위자로 강의를 할 예정이라고 일정을 전한다.
“한국과 북한에서 아리랑을 사회적, 이념적으로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조명하고 있다”는 이 교수는 “남북한 음악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보고 통일이 되면 서로가 서로의 음악을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연구하고 있다”며 노교수의 왕성한 학구열을 불태운다.
동연배 교수들이 거의 은퇴하거나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요즈음 그러나 이 교수는 전혀 은퇴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은퇴한 친구들이 건강관리를 못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날 불러주는 곳이 있는 한, 세계 곳곳을 방문하며 우리의 음악을 주제로 제자들과 후배들과 소통하며 젊게 살고 싶다는 포부를 전한다.
후배들에게는 “세계의 시민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은퇴 후에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한 평생 몸 받친 학문적 작업등을 조용히 정리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한다.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 그는 1967년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직후 유학으로 도미했다. 민족음악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때로 미국대사관 도서관에 드나들었던 그는 미국의 대학을 알고 싶어 카탈로그를 들춰보다가 UCLA의 ‘민족음악학’에 관한 내용을 만나게 됐다고.
하나뿐인 아들이 서울대 국악과에 들어가겠다는 것은 ‘풍각쟁이’가 되겠다는 이야기라고 단정한 선친이 학비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는 독립해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고 회고한다.
시애틀의 워싱턴 주립대학에 유학오며 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민족음악학’ 전공자가 되었다.
석박사 논문은 모두 한국의 불교음악이 주제였다.
1973년 학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음악 (Korea)” 전체를 세계적인 음악사 The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1980년 출판) 으로부터 원고 청탁 받았을 때를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으로 기억하며 잊을 수 없다”며 이 글이 처음으로 서양음악학계에 한국음악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글이었다고 회고하며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흐뭇하다고.
박사과정을 끝낸 1974년 큰 어려움 없이 하와이대 음대 민족음악학 교수가 됐다.
1974년 교수로 부임해온 과정을 이야기하던 중 그는 “처음 부임했을 때, 하와이대학교로부터 한국음악축제를 기획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에도 한국 무용으로 유명했던 한라함 무용단과 성금련, 지영희 등의 국악인을 섭외해 축제를 기획했다”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이교수는 1980년대 하와이대학교를 휴직하고 서울대로 건너가 국제전통음악학회의 26차 회의를 한국에 유치한 이후 젊은 세대들이 다른 나라 음악과 학자들의 연구 환경을 알게 되며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유학을 가기 시작했고. 민족음악학을 공부하려는 한국인 제자들이 생기며 하와이대학교 민족음악학과에도 한국 국악인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한다.
2015년 그의 제자가 진행하던 라디오 서울 하와이 ‘김설아의 국악갤러리’ 초대 손님으로 나와 자신의 음악세계를 비교적 쉬운 언어로 전한 바 있는 이 교수는 풍유를 아는 그의 에너지 넘치는 삶으로 하와이 한인들에게는 음악은 물론 요트를 타고 바다도 즐길 줄 아는 멋쟁이 교수님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이 교수는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할 기회를 놓친 것” 이라고 전한다.